[기고] 진도군민 묻혀 있는 日 교토 귀무덤의 특별한 손님 맞이
/(사)지역사회연구원 책임연구원 김정진
<사진 설명 : 하늘의 눈물이 내리고 있는 위령제>
“애비! 애비야~” 이 말은 저자가 어릴적 마을 어르신들로부터 흔히 듣던 말인데, 전라도와 남쪽 지방에서 어린 아이들이 위험한 물건을 만지지 못하도록 겁을 줄 때 사용했다.
이 말의 어원은 귀와 코를 말하는 ‘이비(耳鼻)’로써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일본이 세계 전쟁 역사에서 저지른 가장 극악무도한 전쟁의 역사적 비극이 담긴 말이다.
일본의 고도인 교토시에 가면 조선인 이총(朝鮮人 耳塚)이 있다. 이 무덤은 16세기말 일본 전국을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대륙 진출의 야심을 품고 한반도를 침략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1592-1598년)과 관련된 유적이다.
히데요시 휘하의 무장들은 예로부터 전공의 표식이었던 적군의 목 대신에 조선 군민(軍民) 남녀의 코나 귀를 베어 소금에 절여서 일본에 가지고 돌아왔다. 이러한 전공품은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이곳에 매장돼 공양의식이 거행됐다고 한다.
바로 비극적인 역사가 남긴 말 ‘애비’의 유래가 됐던 것이다.
● 남원성 전투에 참가한 진도군민
1597년(선조 30년) 음력 8월 12일~8월 15일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이 전라도 남원성을 공격해 조명 연합군과 전국 각지의 의병장들과 군민들까지 합세해 전투를 치렀으나 결국 패배하고 모두 살해당하게 된다.
이 전투가 바로 남원성 전투이다. 「진도군지」에 따르면 남원성 전투에 참가한 의병 중 진도군 의신면 칠전리 출신인 박후령은 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남원성 전투에 참가해 전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기록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다수의 조선시대 진도 백성들도 남원성 전투에 참가해 전사한 것으로 보인다. 남원성 전투에 참가한 전사자는 모두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귀와 코가 베어져 소금에 절여서 일본 교토로 갔고, 이 무덤에 묻히게 된다. 진도군민도 이 무덤에 묻혀 있을 것이다.
● 특별한 손님을 맞이하다
1597년 9월 28일은 이 무덤이 조성된 날짜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임진전쟁과 교토 코무덤(귀무덤)을 생각하는 모임’에서는 1995년 9월 28일부터 해마다 코무덤 앞에서 희생자의 위령, 공양, 추도의 행사를 가져왔었다.
2016년 9월 28일 귀무덤 위령제는 특별한 손님을 맞이했다. 박주언 진도학회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국에서 귀무덤 위령제 참가단이 모집됐다.
한국에서는 귀무덤 봉환 반대 추진위원장 조순명 선생님과 뜻을 같이하고 계시는 김정호, 김길환 선생님, 위령제 공연단으로 예술공동체 소리가마 김현숙 대표, 장애우 문화예술공동체 사람사랑 한홍수 대표, 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씨김굿 이수자 오신숙 선생님, 금빛예술단 전연순 대표, 양지무, (사)지역사회연구원 김정진 책임연구원 등이 참가했다.
올해 위령제 공연단은 진도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예술가들이 주로 참가했다. 모두가 뜻을 같이하고 마음을 모아 귀무덤 위령제를 함께 지냈다.
<사진 설명 : 가던 길을 멈추고 비가 오는 공연장 천막을 받쳐 들고 있는 부산에서
오신 관광객. 뒤편 청바지를 입은 중년 남성.>
● 마음과 마음이 모여 발걸음을 멈추게 하다
하늘의 영혼을 부르는 열림굿 때문이었을까? 귀무덤 위령제가 진행되는 동안 하늘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동양의 가장 고귀한 향으로 존중되는 ‘침향(沈香)’은 가야금 침향무 연주와 함께 가슴속을 파고들었고, 아리랑 병창이 울려 퍼지자 눈시울은 불거져 두 눈에 이슬이 맺혔다.
슬픈 영혼을 위로하는 비총 아리랑 춤과 회심곡 연주로 비극의 역사로 희생된 넋을 달래주었고, 마지막 고풀이로 모두가 하나가 되어 마음과 마음을 모이게 했다.
마음과 마음이 모이고 무덤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가 됐다. 하늘이 울고 사람도 같이 울었다. 잔인한 코 베기 전쟁의 역사적 비극과 슬픔은 위로받았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배낭을 메고 오신 관광객 한 분은 가던 길을 멈추고 공연장 천막의 우산을 받쳐주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끝내 거절하셨다. 그리고 마지막 말을 남기고 가던 길을 가셨다. “공연 내내 계속 울었어요. 너무 슬펐어요…”